사법개혁의 방향
대담한 사법개혁에 나설 때다

2010년 1/4분기에 우리나라는 수출액이 드디어 G8에 올라섰다. 중국, 독일, 미국,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한국 순이다. 영국, 러시아를 추월하였다.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전부는 아닐지라도, 다방면에서 5천년 역사상 가장 눈부시게 국운 융성한 지금의 대한민국은 외국에서도 성공신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60여년의 대한민국 현대사를 총체적으로 평가한다면 능히 성공의 역사라고 할 만하다.
그렇다고 하여도 우리나라는 국정이나 사회의 어느 각 분야를 막론하고 아직도 국가선진화를 향한 개혁 과제가 무수히 놓여 있다.
우리나라가 고도의 선진국가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대한민국 60년의 성공을 바탕으로 이제 ‘국가 대개조’(國家大改造)를 통하여 한 차원 높게 ‘단절적 비약’을 이루어야 한다면, 그러한 대수술이 필요한 국가적 개혁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법부도 국가권력의 한 축으로서 마찬가지다.
저명한 헌법학자 한 분은 ‘우리나라 법원이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가는 데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고 우리나라 형사재판이 자의적인 증거판단과 들쭉날쭉한 양형과 전관예우로 점철된 만신창이여서 수술대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런 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나는 거기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1만여 명 이상으로 급속히 확대된 재야법조인들이 재판이 이루어지는 일상의 현장에서 법관의 재판을 늘 지켜보고 평가하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재판이 그렇게 엉망진창이나 만신창이까지 될 수는 없다.
2010년에 강기갑 의원의 이른바 ‘공중부양’ 사건 판결을 비롯한 특정의 몇몇 하급심 판결이 국민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한 이념적인 호·불호가 폭발하여 급기야 국회와 언론 및 학계를 중심으로 하여 편파판결, 편향판결, 사법파시즘이라는 막말로까지 비화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언론보도를 보면 마치 대한민국 법원이 정말 재판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조직이라는 잘못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였다. 이러한 극단적인 공격이 재판의 권위와 형사사법에 대한 신뢰를 심각하게 무너뜨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법원이 재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있다면, 국민들이, 심지어 외국기업이 한국 법원에 재판을 걸 이유가 없을 것이다.
사법부의 역사를 평가한다면 과거 비민주적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굴절된 모습으로 인하여 아쉬운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비약적인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진전에 발맞추어 재판의 독립 면이나 사건 처리 규모, 인적·물적 자원 및 재판역량 면에서 우리나라의 현재의 국력 수준에 버금가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상고심제도의 개선, 법조일원화의 대폭 확대, 관료적 사법시스템의 개선, 법관인사권 행사의 합리화, 양형의 적정화·합리화, 재판전문성의 제고, 재판관할의 재조정 등 앞으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법개혁 과제가 산적해 있다.
재판제도 자체의 속성을 감안하더라도, 사실 아직도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수준이 만족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과연 사법제도가 적정하고도 신속한 재판, 분쟁의 발본색원적 해결에 적합한 구조로 짜여 있는지, 신속한 재판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또는 밀려드는 사건 수에 비해 재판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적정한 재판’의 이념이 희생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영화 「도가니」「부러진 화살」의 흥행에 따라 재판제도 전반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확산되었다. 이에 동조하는 세력의 법원에 대한 과도한 공격, 정봉주 전 의원에 대한 공직선거법위반 사건의 주심인 이상훈 대법관에 대한 고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에 대한 제1심 재판결과를 이유로 한 재판장 개인에 대한 공격 등 사법부 외부에서 벌어지는 사법에 대한 불신과 저항의 수준은 전례가 없었다.
거기다가, 일부 법관의 부적절한 언동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과 이에 대한 징계 및 법관재임명 탈락에 따른 진통 등 사법부 내부의 갈등까지 겹쳐, 사법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악재는 가히 법조계 전체의 위기로 번지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외부환경의 변화는 법조계나 법조인 전체에 대한 정서적 반감 때문에 증폭되는 면도 있지만, 법조계의 대표 격이자 인권보장의 최후보루인 사법부가 여기서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계속 미적거리면서 대응의 시기를 놓치고 현재와 같은 혼란 상황이 계속된다면, 헌정체제 내에서 사법부가 담당하는 기능과 권위의 실추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종국에는 법치주의와 국가 사법질서가 무력화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대응하여야 한다.
지금 국민들 입장에서는 사법부가 뭔가 좀 더 개혁하고 개선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2011년 9월 양승태 대법원장 취임 이후에 사법제도 전반에 걸친 개혁 작업에 나서지 않고, 평생법관제와 같은 법관인사제도의 개선에 주력하면서, 국민들의 기대 수준에 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국민들은 양 대법원장이 새로 취임한 만큼 국민들의 기대 수준에 맞추어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재판 받고 싶어 하는 법원’, ‘언제나 믿음직하게 재판하는 법원’이라는 인식이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도록 이제 사법부가 사법제도 전반에 걸친 대담한 개혁에 나서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법원을 위한 사법개혁이어서는 안 되고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이어야 한다.
특히 몇 백 명에 불과하던 법관수가 이제 3천명을 바라보고 있고, 헌법재판을 하는 헌법재판소가 별도로 있는데도, 대법원의 상고심은 예나 지금이나 극소수의 대법관만으로 운용하는 것이 과연 현실에 맞는지도 본격적으로 논의하여야 한다.
상고심의 개선방안으로, 고등법원 상고심사부 제도 시행 내지 대법관 증원 또는 대법원의 2원적 구성방안 등이 조속히 검토되어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현재의 3단계 행정구역을 개편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바, 이와 연계하여 전국 법원의 관할구역을 현재의 교통상황이나 생활권역 등에 맞추어 전면 재검토하는 문제도 시급한 과제이다.
이제라도 대법원장은 먼저 법원조직법 제25조에 규정된 「사법정책자문위원회」부터 소집하여 각계 원로들의 고견을 듣는 등 외부 의견 수렴에 나서야 한다. 그 다음, 대법원에 각계각층이 널리 참여하는 「사법개혁위원회」를 만들어 사법시스템 전반에 걸친 대담한 사법개혁을 적극 추진하여야 한다. 여기서 다시 실기하면 현재와 같은 내우외환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사법의 재생(再生)을 이룩할 수 없다는 냉철한 현실인식이 필요하다.
사법부가 자체 사법개혁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또 국회가 나설 수 있다.
제18대 국회는 2010년 3월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 결과 판․검사의 이른바 전관예우 금지(1년간 최종 근무지 사건 수임 금지)를 골자로 한 변호사법 개정을 이루어내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성과는 법원․검찰만이 아니라 행정부의 고위공직자 전체로 전관예우 금지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사개특위는 상당한 합의안을 도출하였지만, 대법관증원과 상고심제도 개선, 양형기준의 국회 동의 여부, 영장항고제와 영장보석(조건부 석방)제도 도입 문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기능 폐지와 특별수사청(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의 신설 문제 등 몇 가지 민감한 쟁점에 대해서는 합의 도출에 실패하였다.
미결 상태인 첨예한 주요 쟁점에 대해서는 앞으로 적절한 시기가 되면 다시 논의가 본격화 될 것인데, 앞으로 사법개혁을 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유념할 사항이 있다.
첫째, 무엇보다도 헌법정신을 존중하여야 한다. 문제의 해결책은 헌법규정과 헌법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입법권이 국회의 고유권한이라 하더라도 국회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회는 행정부와 사법부의 입장과 전문성을 존중하는 토대 위에서 입법권을 신중하게 행사하여야 한다.
개혁 과제를 해결하려면 그 동안 사법개혁을 꾸준히 해왔고 실제로 재판을 담당해야 하는 사법부의 의견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사법부를 배제한 채 외부에서 일방통행 식으로 사법개혁을 해야만 그런 개혁 과제가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지나친 이상론이고 지난 시절 역사적 성과를 도외시하는 것으로서 수긍하기 어렵다.
반대로 행정부와 사법부도 입법권에 대한 의견개진을 넘어서 마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거나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자제되어야 한다.
둘째, 조직이기주의로 인하여 국민을 위한 개혁이 좌초되어서는 안 된다.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요 쟁점은 어디까지나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의 여망을 존중하는 토대 위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사법개혁의 기본목표는 결국 국민의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자는 것이다.
기관이기주의적 발상이나 정략적 접근 태도를 앞세워서는 사법개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고 혼란만 증폭시킬 것이다.
셋째, 한꺼번에 모든 것을 망라적으로 다 이루려고 하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합의 가능한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입법화하고, 첨예한 이해관계가 대립되고 있는 부분은 상호양보와 타협․절충을 통하여 가능한 한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여야 한다.
대법원은 2012년 3월 자체 발간한 ‘사법발전계획’인 「법원은 국민 속으로 국민은 법원 속으로」를 통해 향후 양 대법원장 임기 동안 추진할 주요 사법정책과제와 추진계획을 제시하였다. 이를 통하여 ‘양승태 대법원’의 자체적인 사법개혁 구상이 어느 정도는 가시화되었다.
사법발전계획에 제시된 사법이념과 사법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세부실천방안이 순차적으로 시행되면 국민의 신뢰를 받는 열린 법원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법발전계획에는, 이미 그 동안 추진되어 온 평생법관제와 전면적인 법조일원화 외에도 제1심 강화를 위한 전담․전문법관제의 확대, 민사소송에 대한 국민참여(배심)재판 제도의 도입, 시민사법참여단․시민사법참여위원회의 설치, 사법정책연구기관의 설치, 법관연임심사의 강화 방안은 시의적절하고 주목할 만하다.
특히 법무부 산하의 형사정책연구원이나 헌법재판소 산하의 헌법재판연구원의 성과에 비추어 볼 때 중장기 사법과제의 연구를 담당할 전문연구원(사법정책연구원)의 설치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총론적인 사법발전계획이 수립된 이상, 첫째, 그 실천을 위한 세부 로드맵의 작성이 필요하다. 둘째, 일선 법원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법원행정처에서 향후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여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직접 재판을 담당하고 국민과 소통하여야 하는 각급 법원이 그 실정에 맞게 세부방안을 마련하여 실천함으로써 국민이나 소송관계자의 피부에 와 닿는 변화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한다. 전국적으로 동시 실시가 어려운 사항은 특정법원의 시범운영을 통한 전국적 확산 방식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여기서 유념할 점은, 제1심을 강화하고 국민을 위한 합리적인 재판제도를 마련함에 있어 법원별 또는 재판부별로 재판진행의 절차가 각양각색으로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민사재판 및 형사재판 진행에서 창의적인 방안을 도입한다고 하여 ‘소송절차의 전국적인 통일성의 원칙’이 저해되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소송관계자가 법정에서 혼란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면서 외부 여론을 수렴하여 제1심 강화 방안을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사법발전계획과는 별도로, 대법원은 국민들이 바라는 사법개혁과제의 해결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예컨대 대법관 증원이나 대법원 구성의 변경 방안, 심리불속행제도의 개선, 재판 관할의 전면 재조정, 특허소송체계의 개편, 노동법원의 설치 및 자치구법원의 실치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실기하지 않고 적극 추진하여야 한다.
일부 판사들의 정치적 편향성, 심리불속행제도의 파행적 운영, 사실심 법원의 과도한 조정 강요, 젊은 법관의 재판진행상의 문제점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나 불안을 해소하는 개선 방안이 나와야 한다.
‘언제나 믿음직한 재판을 하는 법원’을 만들기 위하여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을 추진하여야 한다.
대법원에 대법관을 대폭 증원하거나 대법관 아닌 대법원판사를 두든지 하여 대법원의 재판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법관들이 변호사개업을 안하고 평생 판사로 근무할 수 있도록 하고 법조일원화를 어떻게 조기 정착시킬 것인지, ‘경륜 있고 나이 지긋한 법관’에게 재판 받기를 원하는 국민들의 요구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행사하고 분산할 것인지, 변호사단체의 법관 평가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가지고 법관인사에 반영하도록 할 것인지, 특허침해소송을 둘러싼 공동소송대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경기고등법원 설치 요구와 관련하여 전국 법원의 심급과 관할을 어떻게 전면 재조정할 것인지 등 산적한 사법 현안에 대한 개혁 방안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국민과의 소통을 통한 국민의 신뢰와 존경 확보 방안에서 간과되어서는 안 되는 것은, 법원이 존경받고 신뢰받아야 할 가장 중요한 국민은 바로 국민과 함께 호흡하면서 재판시스템에 전문적으로 참여하는 변호사직역이라는 점이다.
사법부가 1만여 명의 변호사 및 변호사단체와 진지하게 소통하고 그 의견을 적극적으로 경청하는 것이야말로 재판에 대한 국민의 신뢰 회복에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것이다.
법조일원화 확대 과정에서 결국 변호사야말로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가장 고결한 인격과 높은 경륜을 갖춘 지혜로운 법관 상’을 달성하기 위한 법관의 인재 풀(pool)일 수밖에 없다.
변호사와 변호사단체가 가진 사법제도에 대한 핵심적인 불만, 예컨대, 심리불속행제도조차 해결하지 못하고서야 국민으로부터 신뢰받고 존경받을 길이 없을 것이다.
향후 사법개혁의 과정은 물론이고 대법원장의 각종 권한 행사 과정은 결국 ‘제도’와 ‘사람’의 문제로 귀착된다.
어떤 인사를 대법관이나 법관으로 선발할 것인지, 재판과정을 어떤 방식으로 보다 투명화할 것인지, 재판의 독립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판결문을 어떻게 공개할 것인지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방안을 추진함에 있어, 사법서비스의 주된 수요자인 변호사단체의 의견을 수렴하고 경청하는 것만 제대로 한다면 국민의 신뢰 회복으로 가는 첩경이 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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